본문 바로가기

60대 부부 일상

어느 시월의 마지막 일요일

SMALL

"침대 머리가 북쪽을 향하고 있으면 나이 들어서 뇌졸증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아진데"

 

며칠전 아내가 말했다. 

 

그래서 20년 만에 침대머리를 동쪽으로 바꾸기로 했다. 나이 들다 보니 흘려 들어도 될 말을 귀에 담아두는 버릇이 생겼다.

퀸사이즈다 보니 침대를 통째로 돌리는게 쉽지 않았다. 대각선 모서리 부분이 장롱 과 벽에 걸렸다. 하는 수 없이 매트리스를 밖으로 빼내고 아내와 함께 침대 몸통을 비스듬히 들어서 돌리는 데 성공했다. 침대가 워낙 무거운 통 나무라서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무게 였다. 

침대를 돌리고 나니까 온 몸에 땀이 흘렀다. 나이드니까 이런 하찮은 일에도 숨을 몰아쉬는 일이 잦아 졌다.
아내도 나도 기진맥진 했다. 잠시 숨을 돌리고나서 청소를 시작했다. 평일에는 아내 혼자서 집안 청소를 도맡아 했고 주말이면 내가 거들었다. 주말에 두 번 하는 청소도 어떨때는 꾀가 나서 대충 대충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아내는 다르다 매일 하는 청소인데 집안 구석구석 아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청소 한다. 그래서 우리집은 늘 반들 반들 윤이 난다.  나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아내는 수 십 년째 하고 있다.

밥하고 반찬만들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반복적 집안일에 아내도 점점 지쳐가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단풍구경하러 하늘 공원이나 갔다올까?"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아내에게 물었다.

 

작년 가을에는 단풍구경 한 번 가지 못했다. 

코로나 시국에 우리라도 이동량 통계에 잡히지 말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러잖아도 올 해는 단풍구경 하고 싶었는데"

빨래를 건조기에 옮겨 애완견에게 간식 하나 던져주고 집을 나섰다. 

 

강변북로에 들어서자 마자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틀었다. 10월의 마지막 날이면 항상 듣고 싶은 음악이다. 가수 이용은 오늘이 일년중에 가장 바쁜 날이 란다.  언제부터 인가 이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아, 또 일년이 지났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월드컵공원으로 진입하는 램프에 도착했다.  차량이 줄지어 서 있었다. 

 

"오늘 주차하기 힘들겠는데."

내가 휴대폰으로 공유 주차자 앱을 열면서 말했다. 

 

"일단 가보고 없으면 농수산물 시장 주차장에 세워놓아야지."

아내가 말했다. 

 

서행하면서 월드컵공원 옆으로 진입하고 있는데 도로변에 주차하고 있던 차량 한 대 가 마침 빠져나왔다.

 

"저기, 저기 세우면 되겠다."

아내가 손가락으로 그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60대 부부는? - 먼저본 것을 먼저 말해 주는 것)

 

 무사히 주차를 마치고 월드컵 공원에 들어섰다. 푸른 나무가지 사이 사이로 울긋 불긋한 단풍이 눈에 들어 왔다.  뒷짐지고 한 발 앞서서 걷는 아내 겨드랑이에 팔을 넣었다. 40대 까지만 해도 외출 할 때 마다 늘 손을 잡고 다녔는데 50대 가 되면서 서로 자신의 손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가족끼리 무슨 손을 잡어"

아내가 이 말을 한 시점이 40대 후반 인 것 같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먼저 아내에게 손을 내밀지 못했다.  가족이니까......

 

언덕 내리막에서 나는 아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10년 전에 동네 뒷산에 올랐다가 발목을 겹찔려서 내려오는데 한 참 애먹은 뒤로 높은 곳에 오른적이 없다. 

 

아내가 내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언덕 아래로 내려섰다. 

 

나이가 더 들면  누가 먼저 일지 몰라도 손을 내밀 것이다. 기력이 조금 더 있는 사람이 기력없는 사람을 부축하기 위하여......

일단 그 날까지는 스스로 잘 걷기를 바랄 뿐이다.

 

낙옆을 밟으며 걷노라니 아내가 슬그머니 다가와서 내 팔짱을 끼웠다. 코로나 이후 실로 오랜만에 아내와의 산책이다.

붉은 잎새 사이로 햇볕이 쏟아져 내려와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을 보듬고 있었다.

 

낙엽 새벽길

 

 저만치 기저귀를 찬 두어살 되어 보이는 아기가 아빠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가고 있다. 아기 얼굴에 작은 마스크가 씌워져 있었다.

"저 꼬맹이는 태어 나면서 부터 마스크 낀 사람들을 봐와서 세상에 태어나면 외출할 때 무조건 마스크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겠다."

내가 아기와 아빠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저렇게 작은 아기 들이 마스크를 쓰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까"

아내가 혀를 차며 말했다.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야 할 텐데......"

"그래도 내일 부터 위드 코로나 한다니까. 일상이 조금 바뀌겠지"

 

그러고 보니 우리 얼굴에도 자연스럽게 마스크가 걸쳐져 있었고 가을 정취를 느끼려고 공원에 나온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어느새 일상이 되어 있는 마스크 생활이 이제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불편할 정도다.

공원을 따라 형성된 호수에 물고기들이 마스크도 없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다닌다.

그 호수를 따라서 심어놓은 나무들이 유난히 붉게 물들어 있다. 나무아래에 텐트치고 가족단위 행락객들이 행복한 10월의 마지막 휴일을 즐기는 모습이 평화로와 보인다.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시냇물에 옷이 흠뻑 젖은 꼬맹이 들이 잠자리 채를 들고 물고기 잡이에 바쁘게 물탕질하는 모습이 해맑게 빛나고 있다.

 

"저녀석 엄마는 여벌옷을 갖고 왔으려나. 저러다 감기걸리면 엄마한테 혼날텐데."

아내가 상하의가 모두 물에 젖은 개구장이를 보며 말했다. 

 

"준비 했겠지. 내가 장모님댁에 갈 때 마다 내 여벌옷도 당신이 늘 챙기잖아"

"하하하, 호호호"

그렇다.

아내는 시골에 살고 계시는 팔순 노모집에 갈 때면 늘 여벌옷을 하나씩 챙겨 갔다. 

시골에 가면 그냥 자연과 함께 하고 싶어서 밭에가서 땅도 파고, 뒷산에 가서 나무가지도 베어 오고, 고기를 구워 먹으면 옷에 냄새도 베어서 갈아 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린 조카녀석들과 함께 시골에 가는 날에는 여지없이 옷을 버린다. 

비눗방울 만들기 놀이와 물총 놀이를 빼먹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조카 녀석들이 성장하여 30대가 되었다. 

손자, 손녀들이 태어나도 함께 놀아줄 힘은 남아 있어야 할 텐데......

 

낙엽을 품은 철쭉

 

공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농수산물 시장에 들렀다. 

시장입구에서 떡복이와 오뎅으로 허기를 채우고 시장을 둘러 보았다. 

젖갈을 사려고 왔는데 오는날이 장날이라고했던가 휴무였다. 

가을 제철 과일을 둘러보다가 채소 가게앞에 섰다.

"이 총각무 한단에 얼마인가요?"

아내가 잘 다듬어진 총각무 다발을 가르키며 물었다.

"한단에 2만원 입니다. 이거 우리가 직접 농사지은 거라서 아주 달고 맛있어요. 다듬은 비용은 안받아요."

표정이 온화한 할머니 말에 두 단을 냉큼 샀다. 

"자, 이 생강은 황토에서 농사지은 거라 달달 하니까 김치 담글때 넣어봐요."

할머니가 비닐봉지안에 손바닥 만한 생강을 넣어주며 말했다. 

 

늘 반찬 걱정이 끊이지 않는 아내는 총각무 두 다발에 흡족한 표정이다. 

이 총각무만 있으면 한 달은 반찬 걱정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10월의 마지막 날 은 잊혀진 계절이 되어 내년에 다시 조우 하겠지. 

 

 

가을 낙엽은 봄 새싹을 준비하는 거

 

(60대 부부는 ? 힘들게 반찬 만들어서 감사하며 나눠 먹는것)

 

 

'60대 부부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35년지기 친구 아들 결혼  (0) 2021.11.03
아내의 삶 그림으로 그리기  (0) 2021.11.03
60대 아내 잔소리  (0) 2021.10.26
자동차 앞유리 교체  (0) 2021.10.25
흰 머리 관리  (0) 202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