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길동무가 생겼어요
“바쁘냐?”
코로나 확진자 증가로 온 세상이 어수선할 때 동대문에서 의류 부자재 사업을 하는 초등학교 친구 전화를 받았다.
“바쁘기는, 힘들어 죽겠다.”
그 친구는 의정부에 있는 장수원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불알친구다.
내가 살아오면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항상 옆에 있어 준 고마운 친구다.
“너는 어떠냐?”
“나도 마찬가지야. 이렇게 힘든 건 생전 처음이다. 시장에 사람이 아예 없어.”
좀처럼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 친구 입에서 힘들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 캠퍼스 대신 동대문시장에 뛰어들었다. 원단 나르는 일부터 시작한 그는 3년 만에 의류 부자재 사업을 시작했다. 펜데믹 이 발생하기 전까지 그 친구 회사에는 대학 졸업한 의상디자이너가 7명이나 있었다. 그러나 지난봄에 전화 왔을 때 사업이 예전과 같지 않아서 사람을 많이 줄였다고 했다.
“난 요즘, 우리 부부 용돈 벌이하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돈이 덜 벌리면 덜 쓰면서 살면 되지 뭐. 하하하.”
내가 큰소리로 웃으면서 말했다.
지난 1992년 10월 1일에 나는 서울 마포에서 우편물 발송대행 사업을 시작했다.
경쟁업체가 그리 많지 않은 생소한 사업이라서 하루가 다르게 번창하여 직원이 25명까지 늘어났다. IMF 국제 금융위기 때 잠시 휘청거렸지만 잘 버텼는데 지금 상황은 그때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행사 안내하는 포스터를 우편 발송하는 것이 전체 매출의 85%인데 코로나로 인하여 모든 행사가 취소되면서 매출은 반의반 토막이 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성장해서 큰딸은 자기 밥벌이를 하고 있고, 둘째 딸은 대학 3학년인데 스스로 아르바이트하며 자기 용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우리 부부 노후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내 마음을 옥죄기 시작했고 불안한 마음이 점점 우울감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여 집에 갔더니 아내가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내일도 일이 없어서 사무실만 지키고 앉아 있어야 하는 답답함 때문에 나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나면 그냥 아내 옆에 앉아서 소파 쿠션을 가슴에 안고 걱정과 근심을 꼬깃꼬깃 접어서 TV 화면에 쑤셔 넣었다.
며칠 후 그 오디션 프로그램 에이스 전에 임영웅이라는 현역 무명가수가 나와서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라는 노래를 불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오랜 세월 가슴에 묻어둔 서러움들이 눈물로 터져 나온 것이다. 그날부터 그의 노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바램’이라는 노래를 듣고 나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내 등에 짊어지고 있었던 삶의 무게를 한꺼번에 바닥에 내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누군가의 노래로 지나온 내 삶을 위로받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래도, 씩씩한 너 목소리 들으니까. 나도 힘이 난다. 다음엔 네가 먼저 전화 좀 해라. 자식아.”
늘 그렇듯 친구는 껄껄 웃으며 짧게 전화를 끊었다. 아마 한동안 그 친구 전화는 없을 거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전화하지는 않는다.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이 살아왔기 때문이다. 한참 시간이 흐르면 어느 날 문득 친구는 나에게 전화해서 ‘바쁘냐?’ 하고 또 물어볼 거다. 그러면 그제야 나는 미안한 맘으로 친구의 안부를 물어본다. 친구의 전화가 다시 올 때까지 나는 내 발등에 떨어진 일을 해결하는데 전전긍긍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다가 그 친구 전화를 받으면 그제야 ‘아, 내가 쉬지 않고 일만 했네!’라고 혼잣말하며 내가 짊어졌던 짐들을 주섬주섬 바닥에 잠시 내려놓는다. 그렇게 59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 세월 동안에 아내를 만났고, 서울 마포에 조그만 다세대 주택을 마련했고, 두 딸을 키웠다. 그게 내 인생 성적표다.
그런데 내년이면 60살이 되는 내 삶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오래된 친구의 전화가 오지 않더라도 내 삶의 짐을 짊어지고 쉼 없이 걸어가지 않는다.
내 귀에는 늘 이어폰이 꽂혀있고, 집과 사무실에 블루투스 스피커가 놓여있다. 나는 길을 걸을 때나, 운전할 때나, 사무실에서 일할 때나, 집에서 쉴 때도 항상 임영웅 노래와 함께한다. 지금은 신사와 아가씨라는 드라마 OST를 무한 반복 듣고 있다.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덕분에 조금씩 일상으로 회복되는 요즈음, 아직 경제적인 어려움이 크지만 11월에 접어들어서면서 견적 요청도 많아지고 일거리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나는 오늘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잘 버텨 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면서 두 손으로 양쪽 가슴을 토닥토닥 쓰다듬는다.
내 생애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만난 임영웅의 노래는 내 남은 생의 길동무가 되었다. 나는 그와 함께 남은 인생길을 쉬엄쉬엄 걸어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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